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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지혜 생활

[마르틴 하이데거]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by 늙은둥이 2023. 6. 23.

 

목차

    하이데거, 그는 누구인가?

     

    하이데거는 실존주의현상학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 매우 영향력 있는 독일 철학자입니다. 독일 바데 뷔르템베르크 메스키르히에서 성당지기 프리드리히 하이데거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처음에는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나중에 하이데거는 프란츠 브렌타노의 박사 논문을 보고 이때부터 존재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후설의 <논리 연구>는 개인적 숭배서가 되었고 후설의 조교가 되기도 하는 등 후설의 영향을 받은 철학으로 초점을 옮겼습니다.

    하이데거의 대표작 <존재와 시간>은 그를 순식간에 세계적인 철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이 책은 미완성의 저작이었음에도 철학뿐 아니라 신학과 문학 및 심리학 등 지성계 전체에 혁명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며, 철학의 고전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이 책은 진정한 존재와 개인의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존재의 본질과 질문하는 존재자에 대해 개념을 탐구하였습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존재의 의미, 시간, 세상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과 끊임없이 씨름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1930년대 초 독일은 아수라장 같은 상황에 처해있었는데 하이데거도 이때 등장한 나치당에 초기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시기의 히틀러는  유대인을 제거하고 세계를 정복하려는 자신의 본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의 정치적 소속은 종종 그의 철학적 공헌을 묻히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나치당과 거리를 두었지만 홀로 코스트에 대한 그의 초기 지원과 그에 따른 침묵은 그의 삶에서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측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이데거의 철학적 작품은 언어, 기술, 예술, 시 등 다양한 영역을 탐구하였습니다. 그는 언어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형성하고 심오한 방식으로 우리의 존재를 드러낸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또한 기술이 인간 존재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면서 진정한 경험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할 가능성에 대하여 경고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하이데거는 과거의 정치적 연관성에 대해 비판에 직면했지만 철학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계속해서 커졌습니다. 그는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많은 이들을 가르쳤고 한나 아렌트와 한스게오르크 가다머를 비롯한 수많은 저명한 사상가들을 멘토링했습니다.

    평생 동안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질문을 탐구하는데 전념했습니다. 그의 복잡하고 종종 도전적인 저술은 계속해서 연구되고 토론되어 철학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존재로, 해석학 및 존재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는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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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데거의 명언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인간은 자신이 언어를 형성시키고 주인인양 행세하지만 사실은 언어는 인간의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물음은 사유의 경건함이므로.

     몇 세기이래 찬란한 것으로 우러러 보여지던 이성이라는 것이 사실은 가장 완고한 사색의 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사색이라는 것이 시작된다.

     과학은 사유하지 않는다.

     가능한 것들이 실제하는 것들보다 우선한다.

     시간은 사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시간은 시간속의 존재들처럼 일시적이지 않고 사라없어지면서도 불변하다.

     우리는 말을 할 때 시간을 얘기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자신의 시간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모든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고 모든 존재는 제 시간에 오고 가는 것이며 지정된 시간 동안 잠시 머무른다. 모든 것은 자신의 시간이 있다.

     

     지나친 밝음은 시인을 어둠 속으로 몰았다.

     네가 어떻게 읽었는지 말해준다면, 너가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생의 근본적 기분은 불안이다.

     모든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들로 태어나서 한 명의 사람으로 죽는다.

     혼자만 존재한다는 것은 함께 존재한다는 것의 결핍 형태이다. 혼자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함께 존재한다는 것의 증거이다.

     죽음에 대해 이해하고 현재를 생각하면, 인생전체를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회피하고 모르는 사람은 일상이 허전하고 불안하며 의미의 상실속으로 던져질 것이다.

     만일 내가 내 삶에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당당하게 맞이한다면 나는 죽음이라는 불안과 삶의 사소함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다. 그 때가 되어서야 나는 나 자신이 되는 자유를 누릴 것이다.

     오직 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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