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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지혜 생활

[에피쿠로스] 작은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어떤 것에도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다.

by 늙은둥이 2023. 6. 26.

 

 

목차

    에피쿠로스, 그는 누구인가?

    에피쿠로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자 에피쿠로스 학파의 창시자이며 그는 철학뿐 아니라 윤리, 물리학 및 인식론 분야에서도 중요한 공헌을 했습니다. 에피루스의 생애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철학자 전기 제10권에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에피쿠로스는 사모스섬에서 태어났으나 그의 부모님은 모두 아테네 출생이었습니다. 플라톤 학자인 팜필루스, 자연주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의 제자인 나우시 파네스 아래에서 공부했던 그는 미틸리니에서 강연했으나 이에 대해 반발이 생겨 쫓겨났다. 그러자 그는 람프사쿠스에서 학교를 세웠고 BC. 306년에 아테네에서 그의 학파가 만남의 장소로 사용했던 '정원'으로 알려진 철학 공동체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행복 추구를 강조하고 평온한 삶과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옹호하였습니다.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인생의 가장 높은 목표는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고 욕망을 최소화하여 정신과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우주가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사건이 자연적인 원인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신을 두려워하고 신을 숭배하는 전통을 거부하고 경험적 관찰과 합리적 탐구를 통해 자연 세계를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물리학에 대한 그의 견해는 미신을 몰아내고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조장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윤리학에서 에피쿠로스는 즐거움과 고통의 부재가 좋은 삶의 궁극적인 척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육체적 쾌락과 정신적 괘락을 구별하여 장기적인 행복과 성취감은 지적, 도덕적 미덕의 추구를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우정이 행복의 핵심 원천이자 고통을 경감시키는 수단이라고 주장하며 우정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적 사상은 널리 영향을 미쳤으며 그가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계속해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사상들은 종종 잘못 이해되고 왜곡되어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를 오로지 감각적 쾌락의 탐닉에 초점을 둔 철학으로 대중적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일생동안 박해와 비판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원칙을 지켜나갔으며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계속해서 많은 이들을 가르치고 자신의 사상을 묵묵히 저술했습니다. 그의 철학적 유산은 그의 추종자들과 그의 사상에서 영감을 얻은 후기 철학자들의 작품을 통해 생생하게 후대에 상속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에피쿠로스는 언제나 단순함의 삶, 지적 추구, 만족함으로 고통의 부재, 그리고 이를 통한 행복 추구를 주창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는 스토아 학파와 대조적으로, 당시 정치 참여에 흥미를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이는 정치 참여는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신 에피쿠로스는 은둔을 지지했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작지만 매우 헌식적으로 그를 추정했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여성을 예외가 아닌 정식으로 받아들인 첫 학파였습니다. 그 뿐아니라 정기적으로 노예들을 그의 학파에 받아들임으로써 그리스인에게 근본적인 인간 평등사상을 소개했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원래 에피쿠로스의 집과 정원에서 열렸습니다. 정원으로 통하는 문에 있는 조각은 세네카의 편지 중 하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방황하는 나그네들이여, 여기야말로 당신이 거처할 진정 좋은 곳이요, 여기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선 즐거움이 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우정을 행복의 재료로 중요히 여겼고, 학교는 친구들과 함께 사는 공동체라 종종 비유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추종자들에게 계급을 매겼고, 그들이 그의 교의에 맹세하도록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다음은 에피쿠로스 추종자들과 관련된 주목할만한 인물들입니다.

    1. 헤르마르쿠스 : 에피쿠로스 사후 에피쿠로스 학파를 이끈 절친한 친구이자 제자, 그는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을 보존하고 전파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함.
    2. 메트로도로스 : 에피쿠로스의 또 다른 저명한 제다였으며 헤르마르쿠스에 이어 에피쿠로스 학파를 이끔. 에피쿠로스 철학의 발전과 확장에 기여함.
    3. 오에노안다의 디오게네스 : 2세기의 에피쿠로스의 그리스인으로서 에피쿠로스 철학자, 에프쿠로스 철학 비문을 새긴 오에노안다 시에 큰 벽을 건설한 것으로 유명.
    4. 필로데모스 : 가다라의 필로데모스는 BC. 1세기에 살았던 에피쿠로스 철학자이자 시인, 18세기 헤라쿨라네움에 있는 파피루스의 별장에서 발견된 그의 작품은 에피쿠로스 철학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
    5. 루크레티우스 : BC. 1세기에 살았던 로마의 시인이자 철학자, 에피쿠로스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의 서사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로 유명

     

    에피쿠로스 명언

     

    쾌락은 즐거운 것을 보태는 것보다도 고통스러운 것을 제거하는데 있다.

     어떠한 쾌락도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 수단이 악의 씨앗이 된다.

     쾌락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우리가 말할 때, 무지하거나 우리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거나 오해하는 일부 사람들의 생각처럼 방탕한 자의 쾌락을 말한다거나 관능적인 향락에서 주어지는 쾌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괴로움도 없고 영혼에 동요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사려깊고 아름답고 정직하게 살기 위한 자신만의 원칙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참된 마음의 평화는 저급한 본능에 사로잡힌 대중으로부터 벗어남에 있다.

     비밀스럽게 살라. 너 자신이 주목받게 하지 말고 삶을 살아라.

     자연이 요구하는 것은 제한되어 있고 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허영심이 요구하는 것은 끝이 없고 얻기가 어렵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을지라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갈망하는 자는 불행하다.

     작은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어떤 것에도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다.

     물욕을 버려라. 정치욕을 버려라. 불멸에 대한 갈망을 버림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쳐 버려라. 공적인 삶보다 작은 공동체에서 가까운 친구와 더불어 지적 교류를 하고 토론하는 삶을 즐겨라.


     
    소박한 식사와 물만으로 만족하며 호사스러운 삶의 쾌락을 멀리할 때, 나의 몸은 상쾌하기 그지없다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면 그의 재산을 늘려주는 것보다 그의 욕망을 줄여주는 것이 더 낫다.

     육체는 항상 무한한 쾌락을 요구하지만, 지성은 뒤따를 불편을 고려하여 욕망을 제한한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신에게 가깝게 만들고, 얻을 수 없는 것은 적어도 해가 되지 않도록 하고,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여하려고 하지 않으며, 멀리하는 것이 나은 모든 것들은 인생에서 몰아내도록 하라.

     신은 악을 막을 의지는 있지만, 능력이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전능하지 않다. 악을 막을 능력은 있는데 의지가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악한 것이다. 악을 막을 능력도 있고 의사도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 세상의 악은 어디서 기인한 것인가? 악을 막을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그를 신이라 불러야 하는가?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라.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모두 감각에 달려 있지만, 죽음은 감각의 상실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올바른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죽게 되어 있는 삶을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그것은 삶에 무한한 시간을 부여함으로써가 아니라, 불사에 대한 동경을 제거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는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지 않고,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을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은 살아 있는 자들과도 관계가 없고 죽은 자들과도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자들에게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고, 죽은 자들은 그들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존재했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이 편지를 내 삶의 마지막이기도 하지만 기분 좋은 날에 쓰네, 소변을 볼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인 데다가 세균성 이질까지 겹쳐 내 고통은 더 이상 심각해질 수 없을 정도네. 그렇지만 내 철학적 사색들로부터 오는 기쁨이 이 고통을 상쇄시켜 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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