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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터너, 그는 누구인가?
테드 터너는 케이블 산업에 혁명을 일으킨 미국 미디어 거물이자 박애주의자입니다. 1938년 11월 19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기업가적인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터너는 브라운 대학에서 학업을 하던 중 부친의 광고판 광고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 학교를 떠나는 결단을 내립니다. 부친의 사업을 물려받아 이끌어 나가며 사업확장의 일환으로 지방 라디오국을 인수하였습니다. 1970년에 그는 어려움을 겪고 있던 애틀랜타에 기반을 둔 케이블 방송국인 WTBS를 인수하여 최초의 24시간 뉴스 네트워크이자 후에 CNN으로 알려지게 된 세계적인 미디어 강자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이 획기 전인 도전은 사람들이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을 바꾸었고 미디어계의 선구자로서 터너의 입지를 굳혀주었습니다.
터너의 미디어 제국은 TBS Superstation, TNT, 카툰 네트워크 등과 같은 다른 케이블 네트워크를 포함하는 TBS(터너 브로드캐스팅 시스템)의 창설과 함께 더욱 확장되었습니다. 그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야구 경기를 전국적으로 방송하는 최초의 슈퍼스테이션을 설립하여 스포츠 방송에도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스포츠 중계권에 힘을 쏟다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애틀랜타 호크스 구단주까지 역임합니다. 호크스에서는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기도 합니다. 위험 감수화 대담함으로 유명한 터너는 또한 MGM 영화 라이브러리를 인수하여 자신의 미디어 자산을 더욱 다양화했습니다. 일화로 영화 쇼생크 탈출이 개봉 당시 인기가 없자 테드 터너가 2차 판권을 사서 자신의 채널에 끝없이 틀어준 덕분에 입소문이 퍼지고, 덕분에 비디오, DVD 판매 수익으로 1억 3천만 달러 이상을 벌었다고 합니다.
미디어 밖의 세상에서도 터너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열광적인 요트맨이었으며 1977년 아메리칸 컵에서 우승했습니다. 터너는 1980년대 냉전으로 인한 올림픽의 연이은 보이콧으로 파행 운영의 틈을 노려 1986년에 평화 증진을 목표로 하는 국제 스포츠 대회인 굿윌 게임를 설립했습니다. 그러나 터너는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는 1996년 자신의 미디어 제국을 타임 워너에 매각하는 등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001년에는 부인인 영화 배운 헨리 폰다와 이혼을 하게 됩니다. 터너의 자선 활동과 환경 보호 노력은 때때로 비판을 받았지만 이러한 대의에 대한 그의 헌신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그가 미디어 환경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뉴스에 접근하는 방식을 바꾸었고 텔레비전 방송을 변화시켰으며 업계에 지워지지 않을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터너 그 자신의 삶은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 쉼 없이 달려 나간 한 인간의 야망, 혁신 및 헌신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테드 터너의 명언
○ 뉴스는 만드는 것이다.
○ 나는 CNN으로 세계를 움직인다.
○ 나를 이끌거나 나를 따르거나, 아니면 나의 길에서 비켜서라.
○ 다른 사람이 무엇인가를 하기 전에 먼저 시작하는 것이 성공의 전략이다.
○ 자기 능력 이상의 목표를 설정하라. 그러면 언제나 열심히 살게 된다.
○ 길게 고민하고 너무 늦게 옳은 것보다 대담하게 단호하고 틀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좋습니다.
○ 절대 그만 둘 수는 없다. 승자는 절대 포기하지 않고 포기자는 절대 이기지 못한다.
○ 인생은 게임이다. 돈은 우리가 점수를 매기는 방법이다.
○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나는 완벽했을 것이다.
○ 제 아들은 이제 '기업가'입니다. 직업이 없을 때 그렇게 부르죠.
○ 저는 아메리칸 드림을 굳게 믿습니다. 이룰 수 있는 꿈이지만 좋은 교육을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 깨우지마라(미리 정해둔 묘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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