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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지혜 생활

알베르트 슈바이처 : 인류애와 박애주의

by 늙은둥이 2023.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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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탄생과 성장

     

    역사의 한 페이지에 지울 수 없는 박애의 족적을 남긴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이름은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슈바이처는 1875년 1월 14일 알자스-로렌에서 태어난 그는 신학자, 음악가, 철학자, 그리고 무엇보다 열정적인 인도주의자였습니다. 슈바이처의 삶과 인류에 대한 공헌은 의학, 음악, 철학 및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라는 철학에 대한 평생의 헌신에 걸쳐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어린 시절은 호기심과 지식에 대한 갈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가정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고 곧 뛰어난 오르간 연주자이자 피아니스트가 되었습니다. 동신에 그는 신학 연구와 철학에 깊이 파고들어 훗날의 인류애와 박애주의의 놀라운 여정을 펼치게 되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20세기 초, 슈바이처는 자신의 인생 항로를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그의 철학적 생각들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자 하는 열망으로 인해 그는 의학 학위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가봉으로의 그의 여정을 반대하였으나 그의 부인은 그의 뜻을 같이하여 간호사 자격증도 취득하게 됩니다. 마침내 슈바이처는 그의 아내와 함께 가봉의 외딴 아프리카 마을인 랑바레네로 출발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소외되고 고립된 사람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병원을 설립했습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신학, 의학, 음악에 능통한 엄친아

     

    슈바이처에 세계관의 중심에는 '생명에 대한 경외'라는 그의 확고한 철학이 있었습니다. 모든 생명체에 대한 그의 깊은 존경심에 뿌리를 둔 이 개념은 인간, 자연 및 우주의 상호 연결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슈바이처는 윤리가 인간을 넘어 동물과 환경을 포괄하여 책임감과 연민을 키워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슈바이처의 아프리카 의학에 대한 진실한 헌신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원시적인 시설과 제한된 자원을 포함한 수많은 고난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병원 운영을 계속 확장하여 결국 매년 수천 명의 환자를 치료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헌신은 다른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 의료 선교에 기여하도록 용기를 주었습니다.

    의학 외에도 슈바이처는 다방면에 능통하고 노력하는 학자였습니다. 그는 신학, 철학, 음악학에 관한 여러 권의 책들을 저술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의사로 유명하지만 실제로 신학박사학위를 가진 신학자이자 철학자였습니다. 그의 '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와 'The Philosophy of Civilization' 등의 저서들이 있습니다.

    그의 의학, 학문적 헌신 이외에도 슈바이처의 음악에 대한 사랑은 지속되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오르간 연주자이기도 하였으며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작곡에 대한 해석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연주에 감정과 깊이를 불어넣는 그의 능력은 삶의 상호 연결성에 대한 그의 폭넓은 헌신을 반영하였습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영향과 유산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영향력은 지리적, 시간적, 학문적 경계를 초월하였습니다. '생명에 대한 경외'라는 그의 철학은 개인, 환경운동가, 인도주의자 등 모두에게 계속에서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명에 대한 경외로움으로 인류의 형제애를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합니다. 아프리카의 의료에 대한 그의 헌신은 현대 의료 선교의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그의 학문적 기여는 다양한 분야에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 누구나 한 번쯤 슈바이처 박사의 위인전을 한 번 읽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만큼 역사 속에서 알베르트 슈바이처만큼 눈에 띄는 개인은 드물다고 할 것입니다. 인류에 대한 그의 변함없는 헌신, 상호 연결에 대한 철학, 의학 및 학계에 대한 놀라운 공헌은 우리 세상에 지속적인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의 삶의 여정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연민, 지식, 모든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믿음이 지닌 변화의 힘을 상기하게 됩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명언

     

    ○ 나는 나무에서 잎사귀 하나라도 의미 없이는 뜯지 않는다. 한 포기의 들꽃도 꺽지 않는다. 벌레도 밟지 않도록 조심한다. 여름밤 램프 밑에서 일할 때 많은 벌레의 날개가 책상 위에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창문을 닫고 무더운 공기를 호흡한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이 더 이상 없다고 결코 이야기하지 말라. 나뭇잎의 모양, 그 잎의 떨림 같이 세상에는 당신을 경이롭게 할 것들이 넘친다.

     생명의 외경의 윤리는 주위의 모든 사람과 그들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고, 사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인간으로서 봉사하라고 요구한다.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우리 자신 속에서 빛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내부에서 빛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면 밖은 저절로 빛나는 법이다.

     나는 살려고 하는 여러 생명 중의 하나로 이 세상에 살고 있다. 생명에 관해 생각할 때, 어떤 생명체도 나와 똑같이 살려고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다른 모든 생명도 나의 생명과 같으며, 신비한 가치를 가졌고, 따라서 존중하는 의무를 느낀다. 선의 근본은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높이는 데 있으며, 악은 이와 반대로 생명을 죽이고 해치고 올바른 성장을 막는 것을 뜻한다.

     모든 사람은 살면서 가끔씩 내면의 불이 밖으로 튀어나간다. 우연히도 이 불씨가 다른 사람에 의해서 활활 불타게 된다. 우리는 내면의 정신에 다시 촛불을 붙이는 사람들에게 늘 감사해야 한다.

     낙관주의자는 늘 파란 신호등 밖에 보지 못한다. 비관주의자는 빨간불밖에 보지 않는다. 정말 현명한 사람은 색맹이다.

     

     우리 어른들이 청년들에게 가르쳐야 할 처세술은 이상에 따라 현실을 살아야 하며 이상을 생활에 뺏기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나무에는 해마다 같은 열매가 달리지만 실제론 매번 새로운 열매다. 마찬가지로 사유에 있어서도 보편적으로 가치 있는 사상이 늘 새롭게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

     성공이 행복의 열쇠가 아니라, 행복이 성공의 열쇠다. 만약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성공한 것이다.

     행복은 좋은 건강과 나쁜 기억력에 다름 아니다.

     나는 오직 한 가지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진실로 행복한 사람은 섬기는 법을 갈구하여 발견한 사람이다.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좋은 것인가?

     끊임없는 친절은 많은 것을 성취한다. 태양이 얼음을 녹이듯, 친절은 오해, 불신, 적의가 증발하게 만든다.

     모범이 곧 리더십이다.

     당신은 당신의 동료들을 위하여 잠시라도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비록 작은 것이라고 해도, 당신은 남들을 위하여 어떤 것을 해야 한다. 그것은 당신에게 돈을 안겨주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자존심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다. 그럴 때에는 더 큰 아픔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이 덜어주고 있다고 생각하라.

     우리는 모두 한데 모여 북적대며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고독해서 죽어 가고 있다.

     모든 환자는 가슴속에 자신만의 의사가 있다.

     독서는 단지 지식의 재료를 공급할 뿐이다.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색의 힘이다. 사색을 포기하는 것은 정신적 파산 선고와 같은 것이다.

     생생한 진리는 인간 사색에 의하여 산출된 것뿐이다.

     삶을 바라보는 인간의 방식은 그의 운명을 결정한다.

     어린 시절의 이상주의 가운데에서 인간의 진리가 발견될 수 있으며, 어린 시절의 이상주의야말로 이 세상의 아무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부이다.

     우리들이 언제나 소년기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느낄 수 있도록 생애를 통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신은 충실한 조언과도 같이 나의 인생 항로에 힘을 주었다. 나도 세상이 성숙한 인간으로 보아주는 그런 것이 본능적으로 반항했다.

     핵전쟁에는 승자가 없고, 있는 것은 패자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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